
중국 브로드웨이 2004년 6월호 표지모델
1 June 2004 at 00:00:00
“그는 모나코가 아닌 윤석진이다”
(Chinese Broadway 6월호 커버스토리)


중국 브로드웨이(Chinese Broadway)의 표지인물 선정은 중국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클래식과 대중예술분야를 총망라한 영향력 있는 예술가들이 선정된다.




“그는 모나코가 아닌 윤석진이다”
(Chinese Broadway 6월호 커버스토리)
글 : 짱찌아린(張佳林)–중국 중앙음악원 교수.
초청 및 무대점유율 1위 중국 최고의 피아니스트.
내가 처음 ‘리틀 모나코’라 불리는 한국의 유명한 성악가 테너 윤석진을 만난 것은 금년 2월 북경에 소재한 자이통문화예술발전중심(紫移通文化艺术发展中心)사무실에서였다.
나는 소위 ‘리틀XXX’라고 불리는 호칭 자체에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예로‘리틀 호로비츠(horowitz)’,‘리틀 카루소’,‘리틀 등려군’,‘리틀 곽난영’ 등의 호칭은 그저 훌륭한 이미테이션 일뿐, 그 누가 그들의 진짜 이름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 물론“요한 스트라우스 2세”,“알렉산드라 듀마 2세”,“호나우도 2세” 같이 혈연관계로 인해 사용하는 Jr.(2세,주니어)같은 별칭은 예외로 하자.
나는 테너 윤석진과 모나코는 사제지간의 연만이 아닌 의부자(義父子)의 연을 맺었다는 사실을 들은 고로, 그의 ‘리틀 모나코’란 별칭을 예술의 전수관계로 인한 것만이 아닌 차라리 혈연관계로 인한 호칭으로 여기고자 한다.
당시 그는 즉석에서 R.Leoncavallo의 가곡 <여명; I Pagliacci>과 푸치니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La fanciulla del west>중의 아리아를 불렀는데 그 풍부한 성량과 강맹하고 우렁찬 음색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에 숨이 절로 막힌 듯 하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기존에 들어왔던 테너들과 비교하자면“호랑이”와 “하룻강아지”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서 형성하는 선명한 콘트라스트는 인간을 대하는 그의 선량함과 정열로서, 수많은 대가들이 지니는 오만함과 체하는 듯한 태도조차 지니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다른 일이 있는 관계로 아쉽지만 반주를 마치고 바로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그 뒤 테너 윤석진을 다시 본 것은 두 달 후 최근의 일이다. 이번에 그는 중국에서 첫 음반을 출시하기 위한 녹음작업을 위해 온 것으로 나는 그의 반주를 맡게 되었다.
그와 함께 녹음작업을 했던 3일간은 나에게 커다란 도전과 연마의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중산음악당(中山音乐堂)같은 훌륭한 공연장에서 비실황 녹음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공연과 녹음작업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라 할 것이다).녹음실과 전혀 다른 가창 환경, 3일내 두 장의 음반 녹음을 완성해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과 제작자측의 아낌없는 지원은 나의 긴장을 배가 시켰다.
더 끔직했던 사실은 녹음현장에서 테너 윤석진을 만나서야 비로서 이번 녹음할 곡목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 많을 뿐만 아니라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 중 베르디 작품과 8곡의 아리아들은 비록 많이 들어 익숙했던 곡이나 직접 반주해 본적은 없었다. (일반 성악가와 음대생들이 이런 수준의 작품들을 부르기 어려우며 나 역시 거의 접해 본적이 없었다.) 또한 몇몇 이태리 Canzone와 민가도 반주해 본적이 없는 곡들이었다. 동료 왕난난이 나를 도와 몇 곡은 분담하여 반주해 주었으나 정신적 압박감은 여전히 나를 무겁게 짖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윤석진 교수가 노래를 부르는 그 찰나 일체의 고민은 봄날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그 순간 문득 진정한 예술가와의 작업은 일이 아닌 즐거움의 향유임을 깨달았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한번도 반주해 본적 없는 가곡과 아리아들을 평소 같으면 몇 일을 연습해야 가능했는데 윤 교수의 지도아래 두 번 정도 연습 하자 바로 녹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때로 그는 내 곁에 서서 노래 부르는 중 호흡 할 부분과 빠르기를 변환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여 알려주곤 하였다. 그가 음악의 유희란 망망대해에서 마음껏 유영하고 있음을 나는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관대한 듯한 느슨함과 상대를 애태우게 하는 듯한 노련함이 나의 손과 머리를 이끌어 손쉽게 작업을 마칠 수 있게 한 것 같다.
지난 2월 처음 만났던 테너 윤석진의 인상은 (<삼국지>의) ‘장비’ 같은 테너로 우렁찬 소리를 맘껏 선보였지만 당시는 준비되지 않은 즉흥적인 가창이었기에 음악의 연관성 및 스타일등은 부족함이 약간 엿보였다. 그러나 이번 정식 음반취입 녹음 중 그가 부르는 각종 곡목을 통해 나의 그에 대한 인식은 매우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의 음악적 표현은 다양함으로 곡목에 따라 변화무쌍하였다.‘장비(역자 주: 포악스럽고 맹목적인 용맹함)’ 같아야 할 땐 ‘장비’같이, ‘조운(역자 주 : <삼국지> 조자룡, 상황파악이 정확하며 영민하고 용맹한 인물)’같아야 할 땐 ‘조운’같이 표현해 낸다. 자유자재의 호흡조절과 확 트인 발성법은 그로 하여금 다채로운 음악적 처리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더불어 천부적인 성량 및 지구력을 지닌 빼어난 신체적 조건은 서정성 인물에서 영웅 호걸형에 이르는 테너의 모든 곡목을 망라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그가 부른 베르디 오페라 <일트로바토레;Il trovatore>의 아리아 “Di quella pira…”는 낭비하거나 아끼는 음이 없이 맹렬하고 거칠게 표현하여 극중인물의 충동성과 극도에 이른 흥분상태를 유감없이 모두 표현하였다; 한편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의 아리아 “Che gelida manina…”를 부를 때 그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친근하면서도 중후한 음성은 질박하고도 인정 많지만 남성적 권위를 잃지 않은 시인 로돌포를 묘사해내어 기타 수많은 가식적인 로돌포들(테너 주역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대범하고 시원스러우며 섹시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해냈다.
나와 같은 오페라반주 및 실내악 피아노반주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은 파트너의 리듬 및 빠르기에 대한 정확성과 엄격성에 매우 민감하다. 일반적으로 너무 많은 성악가들이 이방면에서 우리로 하여금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공경심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윤석진 교수는 한국 창신대학 교수란 직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결코 순수‘학원파’적인 성악가는 아니다. 이것은 결코 그가 리듬감이 떨어진다든지, 자의적으로 고음을 마구 길게 끈다든지, 격정적인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기 위해 쥐가 날 정도로 빠르기를 혼란시키는 가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윤교수도 악보빠르기와 리듬을 변동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음악적 처리는 전체적인 리듬 운율과 선율진행의 규율이란 전제아래 변경되어 진 것이다.
이는 마치 스프링 같아서 길게 늘이고자 하면 끌고 줄이고자 하면 짧게 압축시키는 것이 가능하여 손만 놓으면 원래상태로 바로 되돌아가는 것과같다.
이런 연유로 이번 테너 윤석진과의 녹음작업은 모든 곡목들이 한두 번 만 반주를 맞추면 준비개시 후 십 여분도 채 지나지 않아 녹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와 반주가 어긋날 것에 대한 염려는 일찌감치 접었는데 – 그의 템포는 매우 정확하며, 놓고 당기는 결정적인 대목을 모두 매우 편하게 했다 - 이는 마치 훌륭한 댄스파트너를 만나 스텝이 어긋나거나 파트너의 발을 밟을 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과 마 찬가지였다.
녹음작업을 시작한 지 이틀째 테너 윤석진의 규범적이고 장열한 음색,용암같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탁월한 음악성은 이미 나를 포함한 녹음현장의 모든 스텝을 정복시켰다.
그러나 나에겐 아직 한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그의 hiC(높은”도”)는 어떻게 낼까?
근 이틀간 녹음한 곡목 중 hiC가 있는 곡목은 없었기에 나의 의문은 실로 깊어만 갔다. 사실 지구의 역사상 최고의 성악가 카루소를 비롯한 모나코, 자코미니, 파바로티, 도밍고, 까레라스 같은 세기의 대가들조차도 완벽하게 마스터하지 못해 무대에서 고음처리를 실패한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심지어 카루소는 hiC는 녹음을 남기지도 않았고 많은 곡목들을 톤을 낮추어 녹음했다. 그렇다면 그들과 대등한 실력가라고 할 수 있는 테너 윤석진은 과연 어떠할까? 셋째 날, 나는 충만한 기대심과 극대의 호기심을 가슴에 잔뜩 품고 중산음악당에 왔다. 녹음하지 않은 남아있는 곡목 중 두 곡은 hiC가 있었기 때문이다. 테너 윤석진이 나에게 준 답은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최상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그의 hiC는 막힘이 없고 박력이 넘쳤으며, 힘차면서도 절묘한 강약 조절은 그가 이미 자신의 것으로 매우 잘 소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이 두 아리아는 한번에 성공적으로 녹음을 마칠 수 있었음은 물론이며 다른 대부분의 곡목들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편집적 기교도 필요가 없었다. 난 성악적 기교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그가 B와 hiC를 부를 때 발성을 위한 몸의 움직임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hiC를 부를 때 혼탁한 음은 흔적조차 없고, 성대를 충분히 열어젖히며 전신을 조화롭게 조절하는데 이는 그가 일반적으로 노래 부르는 자세와 비교할 때 훨씬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그가 B와 B플랫을 노래할 땐 전신을 약간 강압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의 목청은 일반인과 다르기에 듣기엔 결코 쥐어짜는 느낌이 없다.
타고난 소리적 자질, 음악적 수양 이 모든 것이 골고루 갖춰진 테너 윤석진. 나는 그를 세계적 테너의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더 이상 그의 우상 마리오 델 모나코의 그림자 뒤에 겸손하게 서있을 필요만은 없다.
모나코는 모나코이고, 윤석진은 윤석진이다.
그들 모두 세기의 훌륭한 테너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