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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의 무대인사 (2004년 6월 25일 북경 중산음악당 독창회 평론)

25 June 2004 at 00:00:00

왕쭝밍 (王忠明) 國資委硏究中心主任 평론

윤석진의 무대인사 (2004년 6월 25일 북경 중산음악당 독창회 평론)

Greg Yoon (윤석진)의 무대 입장, 사회자의 개막을 알리는 손짓, 이어지는 박수소리, 늘 그렇듯이 흔히 있는 "성악가의 모듈"을 보는 듯 했다. 그는 무대아래 관객들에게 미소로서 화답하며 무대 중간을 향해 걸어간다. 박수를 받으며 기대를 받으며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어느덧 무대 가운데서 관중과 마주 본 후 90도는 족히 되는 각도로 허리를 깊숙이 숙여 몇 십초 가량을 꼼짝 않고 인사한다. 마치 카메라 앵글을 당겨 화면을 클로즈업한 것 같다.

심연으로부터 울리는 관객들의 박수소리는 오래도록 멈추지 않았다.

겸손일까? 겸허함일까? 혹은 쇼맨쉽? 아니면 형식으로 포장된 신중함?

이태리의 그 위대한 3대 테너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무대에서 인사하지 않을 것이다. 묵시적인 약속인지, 명성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기는지 그네들의 인사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다 삼류 배우나 이와 같이 할까? 아니 삼류들은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진은 무대등장과 함께 삼류적인 행위를 보여줬다. 이는 자신감이 결여됐다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감이 없는 걸까?

박수소리가 잦아 들고 피아노 건반이 울리며 이윽고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대다수 중국인에게 수입산 이태리 가곡과 아리아는 잘 모르면서 고상함으로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사용 되어 질뿐, 섞여 지지 않는 거리감만이 느껴질 뿐이다. 과거 오페라계는 음악과 가사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이태리어를 모르는 중국 관중들은 이미 가사에 얽매이지 않고, 노래 소리와 선율에서 직접적으로 오페라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페라<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서부의 아가씨>의 '자유의 몸이 되어 떠났다고', <팔리아치>의 '의상을 입어라' 등과 같은 아리아나, S. 도나우디의 '아름다운 그대 모습', E.D.카푸아의 '그대에게 입 맞추리', A. 스카를라티의 '해는 이미 갠지스 강에서' 과 같이 독창회 프로그램은 전곡이 이태리 오페라 아리아 혹은 이태리 명 가곡 (중국가곡 " 長江之歌" 제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테너 윤석진의 풍부한 사운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 및 공연 현장에서도 극찬을 받았던 잘 다듬어진 기술과 힘, 이 모든 것은 이태리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감상의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우리로선 접하기 드문 귀한 기회였다. 반주자 짱짜린이 일찍이 쓴 <그는 모나코가 아닌 윤석진이다> 이란 문장은 윤석진의 예술적 수준을 잘 나타내었다.

"자유자재의 호흡조절과 확 트인 발성법은 그로 하여금 다채로운 음악적 처리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더불어 천부적인 성량 및 지구력을 지닌 빼어난 신체적 조건은 서정성 인물에서 영웅 호걸형에 이르는 테너의 모든 곡목을 망라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 (짱짜린은 공연 당일 "紫移通의 밤(Night of Ziyitong)"에서 윤석진외 가장 인기 있었던 인물로 빼어난 음악성과 문필을 지닌 피아니스트이다.) 이러한 전문가적인 날카롭고 섬세한 비평은 매우 논리 정연하다. 그러나 관중들의 윤석진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마치 소담스럽게 피어난 연꽃같이 소박하고 단순하여 얼마나 듣기 좋은지와 아름다운지에 편중되기 마련이다. 중국의 저명한 성악가 왕신나 선생님의 평가는 이러한 관중의 심리를 가장 근접하고 사실적으로 나타내었다. "이태리오페라는 극장 예술임에 성악가에게 풍부한 음량과 높은 고음처리를 요구한다. 이러한 모든 요구사항을 윤석진은 매우 분명하게 해낼 뿐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관중들은 이번 독창회의 선곡을 통해 그가 이미 이태리 오페라 아리아와 칸조네를 능란하게 조련사가 조련하듯 자유자재로 부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대부분의 성악 학습자들이 뛰어넘지 못한 높은 경지에 달해있음이 분명하며, 금세기 가장 뛰어난 오페라 테너성악가의 왕좌에 자리잡고 있다." 사실 테너 윤석진의 음량, 음색, 흡입력은 일반적인 예술적 경지를 훌쩍 넘어섰다. 삼류들이 어찌 감히 뒤쫓을 엄두나 낼 수 있겠는가?

음악회 현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우리의 청각을 뒤흔드는 행복을 주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윤석진의 남달리 뛰어난 재기가 이룩한 그의 휘황찬란한 업적이다. 그는 일찍이 수많은 국제 콩쿨에서 두각을 드러내었으며,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나비부인", "카르멘" 등 30여 편의 주옥 같은 작품에서 주연으로 호연하였고 200여 회의 세계 순회 공연, 35회의 독창회, 300여 회의 초청공연 및 100여 회의 마스터클래스 및 학술회 참가, 50여 국가의 오케스트라단과 협연 공연, 미국 Los Angeles Conservatory 학장이란 명예로운 직위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과연 그의 명성은 名不虛傳임을 재차 확인 하였다. 그는 이미 국제적인 성악가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이다. 우리는 윤석진을 단지 '한국인', '아시아의 테너'로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자연을 닮은 당당한 풍채는 당초 "잘 알려지지 않음" 에서 (사실 중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으로, 이로서 중국의 대외문화교류가 여전히 폐쇄적임을 알 수 있다) 일순간에 "그 이름을 뼈 속까지 새기겠다"는 결심으로 전환되었다. 도대체 이런 매력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쩌면 무대 인사 일 것이다. 90도는 족히 되게 허리를 숙이고 몇 십여 초는 지속 되었던 그 무대인사,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그것은 보기에는 간단하여 누구나 할 수 있을 듯 하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특히나 윤석진 같은 초 인류 예술자가 삼류의 행태를 취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무대인사는 확대, 설명, 전개, 비교할만하다.

그는 미동도 없이 오래도록 상반신을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러한 동작으로 인해 무대아래의 관객은 그의 얼굴이나 표정을 볼 수 없었으나,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 걸까? 무대아래의 관객에게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교만하게 쳐다봐도 충분히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자가 왜 그토록 겸허하게 관중에게 오래도록 고개를 숙이고 인사할 수 있었을까? 불과 약관의 나이에 윤석진은 천하를 재패하였고 무지개처럼 빛나는 그의 기개는 미래를 측량하기조차 어렵다. 오만을 지나쳐 방종하더라도 역시 상당히 "논리적이고 정상적인 행위"라고 받아들여 질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관중에게 겸손하고 존중함으로 대했다. 어떤 한 예술가의 평론처럼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서 형성하는 선명한 콘트라스트는 인간을 대하는 그의 선량함과 정열로서, 수많은 대가들이 지니는 오만함과 체하는 듯한 태도조차 지니지 않았다." 이는 그의 내면에 충만한 관객에 대한 깊은 정에 의해 빚어진 일이 아닐까? 아니면 일반적인 고결함을 초월하여 가능한 것일까?

그는 여전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매 곡이 끝나면 박수가 울려 퍼진다.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허리를 90도로 숙인 인사이다. 인사하고 연이어 노래를 부르는 혼연일체의 무대연출을 완성한다. 무대인사는 그의 전 예술 생애 중 뗄래야 뗄 수 없는 봉헌이다. 인사는 경청의 일종 마구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에 대한 이다. 박수소리는 바로 환영, 칭찬, 간절한 기대를 나타내는 관중의 마음 소리 인 것이다. 박수를 받을 수 있고, 관중들의 한결 같은 흠모에 도취되어 기뻐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악가가 원하는 바가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연유로 무대인사는 일종의 속죄행위이며, 관중에 대한 침묵의 사의(謝意)이고, 경건하고 태만함이 없는 종의 마음인 것이다.

진정한 성악의 대가들은 영원히 프로패셔널한 기교의 층면에만 머물러 있어, 고상한 정신적 자양이 훨씬 필요하다. 항상 감은(感恩)의 마음을 품는 것 이것이 바로 가장 감동적이며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를 정복시키는 '아리아'다. 다시 말하자면 진정한 성악의 대가들은 빼어난 목청 뿐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고결함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이는 일종의 자기 봉헌이다.

이것이 없다면 성악가의 노래 소리는 결국 영양결핍에 걸린 듯 건조하고 척박해질 것이다. 세상 천지에 성악을 배우는 사람들은 적지 않으며 천부적인 성악가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과연 그 중 몇 명이 윤석진과 같은 국제적인 지명도와 영향력 및 예술적 성과와 업적을 가질 수 있을까? 천부적인 조건, 훈련상의 차이 이외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과 타고난 소질 함양의 차이이다. 사실, 중국의 음악계는 치켜 세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안하무인격으로 자신만을 잘났다고 여기는 성악가들의 자기 수련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병폐는 중국 성악계의 건강한 발전과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까지 중국에서 진정한 성악가는 관중의 희망과 이상에만 존재하고 있을 뿐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무대인사는 이미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 이태리 3대테너가 허리를 90도 숙이는 인사를 하든 안 하든 그네들이 세계적인 테너임은 부정할 수 없다 무대 인사만이 모두에게 알려지게 하는 도구라는 피상적인 해석은 더욱 필요 없다. 무대매너가 어찌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정신(영혼)"이지 "겉모양" 이 아니다. 윤석진과 같은 모양새로 만드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정말 갖추기 힘든 것은 바로 정신이다.

대부분의 훌륭한 예술가들은 평생을 열심히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여 팬들과의 상호교류를 구축한다. (사실 이 상호관계는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훈련이 필요하며 여러 가지 유혹을 이겨낼 수 있고 항상 평온한 마음과 태도로 힘써야 한다. 아울러, 설령 윤석진 같이 모든 공연을 전심전력으로 펼치고 관중을 존중하며 팬 서비스 정신에 조금의 소홀함이 없더라도, 만약 그 안에 정신(영혼)이 없다면 많은 투쟁과 시련을 겪어도 역시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국제적인 하이얼 그룹 (베랑Group) CEO 장뤼민(?瑞敏)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뭘까요? 간단한 일을 매일매일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간단하지 않은 거죠" 이 말은 비록 단순한 듯 하나 철학을 담고 있다. 윤석진의 관중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모든 공연 안에 담겨 있다. 공연마다 하는 인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간단해 보이지만 천부적인 재능과 근면을 동반자로 삼기에 일반인은 꾀하기 어려운 신중함과 초월성이 있는 것이다. 나이팅게일, 부엉이, 닭 등 온갖 새들이 울고, 짱아우(Tibet지역의 토산견)가 컹컹 짖어대고, 두꺼비가 울어대는뀉이 세상은 얼마나 다채롭고 풍부한가! 그러나 창법에 대해서 논한다면 이는 두 가지 형태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입만 벌리고 노래 부르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에 대한 공경심과 세상 만물에 대한 고결한 마음가짐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본인 스스로를 훌륭하다고 여기며 위에서 남을 내려다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것, 또 하나는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든 관중을 섬기는 마음으로 노래 부르는 것이다.

     

윤석진이 영원히 두 번째 창법을 선택하길 충심으로 희망한다.

다행이 윤석진 그는 말했다. "나는 차라리 3류를 선택할 겁니다." 라고......

     

     

(작가 : 國資委硏究中心 主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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